모든 욕망이 덧없이 스러지는 곳
미디어 아티스트/영상 감독 박상훈
그의 사진은 회화적이다. 프레임 안의 모든 빛과 그림자는 실재성을 훌쩍 넘어서 버린다. 거기에는 몽환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아득한 느낌이 있다. 정지한 듯 보이는 공간 속에 역으로 억겁의 시간이 쌓여 있다는 환각을 일으킨다. 영원과 순간이 한자리에서 부드럽게 공존한다. 그래서 회화적이다. 현실감각이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 몽환의 풍경으로 들어가다 보면 묘하게도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된다. 자연의 거대한 섭리 속에 외따로 떨어진 우리 존재의 미미한 흔적. 쓸쓸한 우리 그림자는 왜소하거나 아예 구도 밖으로 밀려나 있지만, 그런데도 나는 그의 사진 속에서 ‘나’를 느낀다. 사진 속에 몰아치는 거센 바람보다 강렬하게. 왜일까. 내가 그의 사진을 처음 접한 건 고인이 되신 디자이너 하용수 선생을 통해서였다. 사진 속에서 블루칼라의 가을비와 하나가 된 하 선생을 보면서, ‘이 사진 참 좋구나’ 했었다. 하 선생도 생전에 유독 그의 사진을 사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권혁민 작가를 인물 프로필 작가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인물도 많이 찍었다. 그랬던 그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띄엄띄엄 징검다리 놓든 던져주는 사진을 통해서, 새로운 지평으로의 순례길에 올랐다는 걸 느꼈지만, 그 결과는 예상이 어려웠다. 사람을 찍는 작가가 사람을 벗어나 얼마나 버틸까 싶었다. 돌아온 그는 거대한 자연과 함께였다. 북유럽의 거친 해안가를 뒤지던 그의 눈길은, 귀국 후에 좀 더 자유로워졌다. 우리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프레임에 담았다. 경이로웠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